멸종 위기 저어새의 비밀
김수일(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엊그제로 지구상의 인구가 자그마치 60억을 돌파했다고 한다. 그 많은 생물 종 가운데, 또한 고등동물로서 단연 최고수준의 개체군을 이룩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런가하면 우리 사람과 매우 비슷한 감각과 생리적 특성을 가지고, 또 비슷한 생활환경에서 살아가는 고등생물 가운데 멸종위기에 처한 종들이 적지 않다. 오죽하면 자기들 종족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가 되었겠나. 그러나 그 이유의 대부분이 다름 아닌 사람들 때문이라면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이 뻔하다.
밭가는 쟁기모양의 부리를 좌우로 저어가며 먹이를 찾는 이상한 모습의 새가 있다. 옛말로 ‘가리새’라고도 불렸다는 새인데, 오늘날 ‘저어새’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바로 그 새다. 생김새로 말하자면, 길다란 주걱부리를 가진 하얀 새인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북한에서는 노랑부리저어새와 달리 얼굴 앞쪽이 검다하여 ‘검은뺨저어새’라고 부른다. 어떻든 저어새는 나에게 ‘신기루’와 같은 새였다. 지난 수년간 나는, 저어새를 좀더 알기 위하여 우리 나라 서해안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최근에 와서 저어새에 대한 관심은 세계적으로 증폭되고 있다. 새로 개편된 세계 멸종위기 조류 목록에서 저어새를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의 조류로 다루기 시작한 사실과 때를 같이한다고 볼 수가 있다. 지난 98년 1월, 저어새가 겨울을 지낼 만한 모든 동아시아 습지에서 그들 수효를 한날 동시에 세어본 결과 최대 수 6백13마리가 기록되었다. 이는 곧, 전 세계에 단지 6백13마리 이하가 생존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또 다른 하나의 문제는 이들 저어새의 생활사, 혹은 번식생태에 대하여 그 누구도 별로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외국의 종합적인 자료를 보더라도 단편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다만 추측에 불과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일본을 필두로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는 실태파악을 위한 정보망을 서둘러 구축하는 한편, 인공위성 추적장치를 이용한 저어새 이동경로 추적, 혹은 유전적 계보 파악 등의 연구계획을 활발히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북한에서는 평안남도 덕도를 중심으로 저어새의 번식생태에 관한 직접적인 관찰 조사를 수년내 실시해 오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 주변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저어새 연구를 위하여 이처럼 다각적인 노력을 펼쳐 오는 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 왔나. 나의 지금까지 조사결과에 의하면, 저어새는 단연코 우리 나라 서해안 갯벌을 무대로 생존의 마지막 불꽃을 지펴가고 있는 새인데도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1968년이래 저어새와 노랑부리저어새를 천연기념물 제 205호로 지정하여 보호해 왔다. 그러나, 저어새와 노랑부리백로는 비록 모습이 흡사할지라도 유전적으로나 습성 면에서 서로 매우 다르다. 우선, 저어새는 우리 나라 서해안을 중심으로 주로 번식하는 해안 갯벌의 조류인 반면, 노랑부리저어새는 유라시아대륙 안에 널리 분포, 번식하고 일부 개체가 우리 나라 내륙에 치우친 습지를 통과이동 하거나 겨울을 지내는 겨울철새이다. 저어새는 또한 유전적으로 노랑부리저어새보다 호주대륙에 분포한 황제저어새(Royal Spoonbill)에 더 가까운 종류로 알려져 있다.
저어새는 보통 3년 이상 나이를 먹은 뒤 비로소 번식을 하는 새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번식에 꾸준한 성공을 해 왔다고 하더라도 현재 생존하고있는
6백여 마리 가운데 불과 2백여 마리, 즉 1백여 쌍만이 번식연령의 개체들일
것이다. 중국 해안에서는 번식개체군이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부분
나이 어린 비번식 개체들이 월동지로부터 한국 서해안에 도달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개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1백여 쌍의 번식 개체군
가운데 북한에서 번식하는 개체들이 약 20쌍이라고 하면, 나머지는 거의가
남한 서해안에서 번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대략 80쌍 정도를 부양할 수
있는 서식지는 바로 우리 나라 서해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가 된다.
저어새의 번식지는 대개, 사람의 출입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광활한 갯벌을
끼고 있는 무인도들이다. 더욱이 인공위성 추적의 결과를 보더라도 대부분
서해 경기만 북부 비무장지대의 작은 섬들이 번식지일 것이다.
보통 10∼20쌍 정도의 번식 쌍이 한 지역 번식지 내에서 거의 동시에 번식하거나, 아주 작은 바위섬에서는 불과 1∼2쌍이 번식하기도 하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였다. 아직 더 많은 사례에 대한 비교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이제까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저어새는 번식지 선택에 남다른 까다로운 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러 가지 번식지 조건 가운데 생산력이 풍부한 갯벌의 규모는 번식 쌍의 규모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인 것으로 보였다. 먹이를 찾는 습성으로 보더라도 저어새들은 밀물과 썰물의 시간대를 매우 잘 알고 행동하는 듯 보일 정도였다. 썰물과 함께 물골에 나가 먹이를 찾고, 밀물 때는 물결이 밀려오는 갯벌 끝으로 물 마중을 나가 먹이를 먹으며 들어오기도 한다. 실로, 우리 나라 서해안 갯벌이 아니면 벌써 사라지고 말았을지도 모를, 우리 갯벌 생태계의 한 가족이요, 마지막 보배인지도 모른다.
번식기의 저어새는 그 용모와 자태,그 어느 모로 보나 황홀한 ‘신기루’가
아닐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는 저어새가 10년 이내, 또는 그들 3세대기
안에 멸종될 확률이 80% 정도인 것으로 진단하고 있어,
이를 심각한(critical) 멸종위기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들에게 필수적인
서식지 보전을 포함하여 이 처럼 꺼져 가는 불꽃을 다시금 지펴가기 위한 적극적
부양관리 노력도 펼쳐가야만 할 때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