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부리백로
김수일(한국교원대 생물교육과 교수)
눈에 띄게 온몸이 하얀 백로. 노랑부리백로는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을 주 생활무대로 삼아 살아가는 매우 희귀한 백로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서해안을 중심으로 중국의 동남부 해안까지가 이들의 유일한 번식지이다. 겨울철에 동남아시아 싱가포르와 필리핀 등지에서 월동하는 개체수를 모두 합해도 불과 2천5백여 마리뿐인 것으로 추정되는 국제보호조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연기념물 제361호로, 그리고 환경부 위기종으로 지정하여 보호대상인 새이지만, 이와 같은 지정조치가 비교적 최근에 취해져 ‘늦둥이’ 보호조인 셈이다.
백로는 일반적인 분류상 황새목 백로과에 속한다. 세계의 백로과 조류는 해오라기류를 합하여 모두 62종이 분포되어 있다.
한대지방을 제외한 여러 나라에 적지 않은 종류의 백로류가 분포되어
있다. 그밖에 황새 17종, 따오기와 저어새 31종 및 홍학 4종 무리
를 합한 황새목 조류 모두는 1백15종 이상이 된다. 세계 여러 나라에는 적지 않은
수의 백로류가 살고있는 셈이 된다.
해오라기를 제외한 백로류는 일반적으로 온몸이 하얗다는 공통적 특징이 있다. 때문에 백로는 어디서나 그리 드물지 않은 새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백로류만 하더라도 노랑부리백로 말고도 쇠백로, 중백로, 중대백로, 대백로가 있고 또 색깔이 다르지만 황로, 흑로, 왜가리, 붉은왜가리 및 여러 종류의 해오라기들이 있다.
아마도 그런 때문에 노랑부리백로의 희귀성이 오래도록 큰 관심사로 드러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철에 논을 비롯한 농경지 부근에서 적지 않은 수의 백로들을 찾아 볼 수가 있다. 대개는 쇠백로, 중백로, 중대백로, 또는 황로들이고, 대백로는 가을 이후에 저녘으로부터 날아온 무리를 볼 수가 있다. 다른 나라들에도 이처럼 서로 비슷한 모습의 또 다른 백로들이 분포하고 있어, 백로들 모두가 그리 드물지 않은 새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가 쉽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논이 많지 않은 서양 여러 나라들에서 백로류는 해오라기류와 마찬가지로 수초가 무성한 습지로 찾아가지 않는 한,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새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곳곳에 남았던 자연습지가 훼손되면서 논 주변에서 보는 백로들을 제외하면 많은 종류가 이미 희귀해지고 말았다. 그 동안 습지조류, 또는 ‘물새’들이 날로 사라져가고 있었던 것을 우리가 잊고 있었던 셈이다.
서식지가 훼손되고 나면 그 안에서 살아가던 많은 새들을 함께 잃게 되는 것이 분명한 이치인데도 말이다.
노랑부리백로는 다른 백로류와 달리 매우 희귀할 뿐만 아니라, 대단한 매력을 지닌 물새이다. 마치 어두운 색깔로만 펼쳐진 갯벌 위에 화사한 생명력을 찬미하는 무도회를 연출하듯 자태가 또한 아름답다. 번식기 중 뒷머리에 가지는 여러 가닥의 댕기모양 장식깃은 더할 나위 없이 요염한 형상의 선녀라고나 할까. 몸 크기는 쇠백로보다 약간 큰 정도인데, 옅은 노랑색이 선명한 부리는 쇠백로처럼 몸 크기에 비해 긴 편이다. 그러나 쇠백로의 부리는 검은 색이고 곧게 뻗었으나 노랑부리백로의 부리는 아래로 약간 매끄럽게 굽은 점, 그리고 눈 언저리 피부가 파랗게 드러나는 점으로도 구별된다. 땅 위에 서있거나 걸을 때는 다른 백로류에 비해 몸을 곧게 세우는 편이고 앞쪽으로 높이 올리는 다리의 움직임이 특징적이다.
물 밖으로 드러난 갯벌에서 먹이를 잡을 때는 낮은 자세로 먹이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이 또한 일품이다. 백로들이 흔히 어느 한 계절에 노랑색 부리를 가지므로, 이름처럼 노랑색부리만 으로는 뚜렷한 구분이 곤란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엇보다도 다른 백로류에 비하여 서해안 갯벌을 주무대로 살아가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다. 노랑부리백로의 영명은 Chinese Egret, 또는 최초 명명자의 이름을 따서 Swinhoe’s Egret이라 하는데, 최근에는 어느 특정 국가 이름을 붙이는 것을 고쳐나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배경으로 볼 때, 노랑부리백로의 다른 이름으로 황해백로, 또는 선녀백로가 더 적합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지난 2년간 우리나라 서해안 일대의 노랑부리백로 서식실태를 파악한 결과 상당한 윤곽을 밝힐 수 있었다. 지난해 조사결과, 천연기념물 제360호로 지정 보호받고 있던 경기도 옹진군 신도 번식지에서는 더 이상 번식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는데, 최소 2백50쌍 정도가 동만도로 옮겨 번식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은 가까이 위치한 장봉도 및 영종도 일원의 너른 갯벌에서 먹이를 찾고 있었다. 경기만 남쪽에 위치한 영흥도와 대부도 갯벌에서도 여름철 번식기 중에 약 1백여 마리의 노랑부리백로를 볼 수가 있다.
멀리 덕적군도 일원의 무인도에서도 번식의 흔적을 발견한 바 있는데, 해안 갯벌에서 멀리 떨어진 번식지까지 암수가 번갈아 오가며 먹이를 구해 나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밖에 충남 해안에서도 의외의 노랑부리백로 번식지를 발견하기도 했다.
중국 동, 남부 해안과 홍콩의 습지에서는 10여 쌍 미만의 적은 수가 번식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전세계의 2천5백여 마리 가운데 번식 나이에 이른 거의 모든 쌍은 우리나라 서해안의 갯벌과 무인도를 생존 환경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결코 무리가 없을 것이다.
노랑부리백로에 관한 한, 우리나라가 바로 종주국인 셈이며, 우리나라 서해안의 갯벌이 아니면 이들의 번식과 생존의 부양이 보장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의 다양한 법률에 의하여 보호대상종 목록에 올라 있다고는 해도, 스스로 남아있는 이들을 살리고 또 번성케 하기 위하여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해 왔나, 깊은 반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들마저 또다시 이 땅 안에서 ‘멸종’이라는 서글픈 마감으로 사라지기를 가만히 앉아서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